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까 사람을 믿어보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되어줄 겁니까? 당신은 진짜로 진지한 겁니까? - 나쓰메 소세키,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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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초초초초능력

미드를 보면 여전히 초능력자들 얘기다. 최근에 케이블에서 보기 시작한 <리스너: 생각을 듣는 자>의 주인공도 다른 사람을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정반대로 자신의 생각이 만인에게 들리는 <사토라레>라는 일드도 있었지만, 이것은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기보다는 핸디캡에 가까우므로 초능력자 이야기에 넣지 않아도 될 듯하다. <고스트 위스퍼러>의 주인공은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스트 앤 크라임>의 주인공은 꿈속에서 앞으로 벌어질 강력사건을 본다. 초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하는 미드로는 그 이름도 참 노골적인 <히어로즈>가 있다. 텔레파시, 시간여행, 공간이동, 비행능력, 독심술, 예지력, 염력, 사이코메트리, 기계통제력, 불사조처럼 죽지 않는 세포재생능력, 대상을 복제하여 다른 인물로 변신하는 능력,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초능력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까지 나온다.
사람들은 그토록 초능력을 꿈꾸는가. 초능력을 꿈꾸는 것은 어떤 욕망일까.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일까,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욕망일까,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픈 욕망일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없이 나열되고 재생되는 초능력의 종류들을 바라보지만 정작 가지고 싶은 초능력은 하나도 없다. 모두 쓸데없는 것뿐이다.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로 가도, 예지력을 통해 미래를 봐도, 결국 현재에 머무르게 해주지는 못한다. 독심술로 타인의 마음을 읽고 텔레파시로 내 마음을 전하고 염력으로 상대를 위협해도 진정으로 사랑하고 사랑받게 해주지는 못한다.
이렇게 말하면 초능력에 욕심내지 않는 소탈한 인간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 스무 살 무렵, 투시를 하게 해준다는 말에 홀려 단학선원에 찾아간 나다. 만약 누군가 초능력을 욕망한다면,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단순하고 소탈하다고 말해주겠다. 하늘을 날거나 과거로 가거나 손에서 불을 뿜어서 건물에 던진다고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초능력자가 된다 해도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고 새롭게 만들지 못한다. 그저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는 것뿐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좀 더 깊고 근본적이고 불가능한 변화다. 평범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그러나 초능력을 가진 인간에게도 똑같이 어려운, 그리고 신이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독심술 없이 타인을 이해하고, 불사조가 아니면서도 목숨을 바쳐 사랑하고, 신이 아닌데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것. 초능력자가 생물학적으로 '변형된' 존재인 것처럼 이런 인간 역시 자기를 '변형시켜야' 한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미드의 초능력자들은 자기 능력에 익숙해지고 권태로워지고 틀에 박힌 듯이 행동하는 한편, 자기모순은 영원히 극복하지 못한다. 갈수록 구태의연해지는 그들의 모습에 나 자신의 모습이 겹쳐 괴롭기 짝이 없다. '나'를 뛰어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초'능력이 아닐까-_-

by 당고 | 2009/11/04 14:09 | 흔적 | 트랙백 | 덧글(22)
내 탓이오

*
계절을 조금씩 앞서가는 것 같다. 11월이면 가을이라고 불러도 될 텐데 나는 벌써 겨울을 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최저기온이 1도라잖아. 사람들이 이 추운 날씨에 코트는 입고 다니나? 나는 알 길이 없다. 너무 추울까봐 하루 종일 밖에 안 나갔으니까. 그런데 안 나가도 춥다. 아흑.

*
아주아주 옛날의 순정만화인데 한승원이 그린「느낌이 겨울인 그대」라는 단편만화가 있다. 한승원은 그야말로 '순정틱'한 순정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였는데 지금 보면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날 거다. 이 만화의 내용은 친구인 남녀가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매우 뻔하게 그린 건데, 이상하게도 난 겨울만 되면 이 만화가 생각난다. 아마도 주인공 남녀가 겨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묘사한 부분 때문일 거다. 여자는 아주 춥고 삭막한 이미지로만 겨울을 떠올리는데, 남자는 추운 겨울을 오히려 '따뜻함'으로 설명한다. 따끈따끈한 군밤이나 군고구마, 불 앞에 모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추억, 두꺼운 스웨터 같은 것이 그에게 겨울의 온기를 전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때 이 만화를 보고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아하,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뭐 이런 종류의 깨달음? 그래서 그 뒤부터 겨울이 오면 일부러 따뜻한 것을 많이 생각하려 했다. 따뜻한 이불 속이라든지 고타츠라든지 핫초코라든지 사람의 체온이라든지...... 아, 근데 이게 뭐야? 기온이 내려가니까 여전히 미친듯이 춥기만 하네? 역시 세상은 관념만으로 바뀌지 않는 거야-_-;

*
나의 겨울이 늘 추웠던 이유는 가혹한 난방사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지독할 만큼 철저한 절약철학을 지니고 있던 엄마는 난방을 잘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늘 '엄마, 조금만 더 불을...... 30분만 더 불을 때면...... 제발......' 하며 따스함을 갈구했지만(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걸렸던 당고는 절대로 부모에게 뭔가를 대놓고 요구하진 않았다) 돌아온 것은 차디찬 바닥과 코끝을 스치는 냉기였다. 다행히 초등학교 6학년 때 빌라를 떠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 아파트는 중앙난방이었다. 야호! 지구환경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그 아파트는 집 안에서 내복만 입어도 더울 정도로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댔다.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아파트의 난방원칙 덕에 후끈후끈한 황금난방기를 보내게 되지만, 낡은 아파트는 곧 더운 물이 지나가는 배관에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겨울이 오면 엄마는 늘 호스로 에어(?)를 빼내며 난방이 잘 되는지 신경을 써야 했고, 뭔가 막힌 구석이 있었던 고로 집 안의 온도는 살짜쿵 다시 내려갔다. 그래도 엄마 스스로 난방을 조절하던 때에 비하면 백배는 살 만했다. 시간이 흘러 우연한 기회에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내 방에서 나오는 난방비는 당연히 내 지갑에서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목숨을 걸고 난방비를 아꼈다. 누가 우리 엄마의 딸 아니랄까봐-_-; 기숙사 사감이 난방비를 보고 깜짝 놀라서 내가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걱정할 정도였다-_-;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거의 히터를 켠 적이 없을 정도로 난방을 하지 않고 그해 겨울을 보냈다. 너무 추우면 공동으로 쓰는 부엌에 가서 공부하고(부엌은 불도 때고 히터도 켜놔서 따뜻하니까) 잘 때는 코트까지 입고 잤다-_-; 아무튼 스스로의 절약벽(?)으로 가혹한 겨울을 보낸 뒤에는 본가의 낡은 아파트에서 그럭저럭 따뜻하게 보냈으나, 독립한 지금은 다시 추워졌다. 자취방의 난방기준이 무슨 공무원들이 일하는 건물의 기준 같다. '30도 이상이면 에어컨을 켜볼까'라든지 '영하면 난방을 해볼까'라든지-_-; (물론 공공건물 냉난방 기준은 이것보다 훨씬 양호하다;) 오늘은 최저기온 1도라서 엄청 고민했다. 따뜻하게 살고는 싶지만 나의 절약벽과 가난을 생각하면...... 음-

*
결국 겨울이 추운 것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세 번을 외쳐본다-_-

*
그래도 음식은 따뜻한 겨울답게! 오늘 밤엔 군고구마를 먹고 핫초코를 마실 테다!

by 당고 | 2009/11/02 17:22 | 사소한 | 트랙백 | 덧글(46)
2009년 10월 넷째 주 책책책
용산참사 피해자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 걸 보고 할 말도 잃고 의욕도 잃고. 시간은 흘러 흘러 벌써 10월의 마지막 날.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무슨 책을 읽어야 할까.

무례한 복음, 인간 수컷은 필요없어, 나와 마릴린
by 당고 | 2009/10/31 01:11 | 흔적 | 트랙백 | 덧글(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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