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내게 부끄러움이다베리배드씽 님께 받은 독서문답!
그런데 막판이잖아요. 막장이란 말이죠. 문답 규칙 무시하고 제 얘기만 씁니다. 부디 용서와 자비를!
나에게 독서는 [자연스러움]이다.
일단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자연스럽다'의 뜻을 한번 볼까?
「1」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다.
「2」순리에 맞고 당연하다.
「3」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내가 하는 독서는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고, 나에게 독서란 곧 순리에 맞고 당연한 것이며, 나의 독서습관은 힘들이거나 애쓰지 아니하고 저절로 된 듯하다. 자연스럽다는 건 숨 쉬는 것과 같은 거고, 그래서 별거 아닌 일상적인 것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소중하기도 한, 뭐 그런 거다. 숨 쉬는 걸 중요하게 자각하는 사람은 없지만 숨을 못 쉬면 곧 죽는 것처럼.
우리 엄마는 용감해 보이지만 실은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겁이라기보다는 '기우'가 많은 사람이었다. 아이가 다쳐서도 안 되고 유괴되어서도 안 되고 아이를 잃어버려서도 안 되며 아이가 아파서도 안 된다. 이런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엄마는 책임감에 짓눌려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랑과 책임감의 경계는 늘 미묘하지만 그건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고. 어쨌거나 그런 연유로 나는 집 안에서만 노는 아이가 되었다.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한 기억도 없고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찰방찰방 밟으며 옷을 더럽힌 적도 없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술래잡기나 얼음땡을 한 기억도 없다. 그저 마냥 집에 틀어박혀 엄마가 책을 읽는 걸 지켜볼 따름이었다. 우리 엄마로 말할 거 같으면, 집안일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고 김치를 세 포기쯤 담으면 사흘은 앓아누우며 다만 무언가를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집 안 여기저기에는 늘 신문과 책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집 안을 좀 더 깔끔하게 정리정돈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동네 아줌마의 조언도 있었지만, 아줌마가 돌아간 뒤 엄마는 내게 말했다. "집을 치우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어진다. 그걸 알아야 돼." 엄마가 책 읽는 걸 주야장천 보다가 곧 나도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읽지 않는다면, 도대체 내가 무얼 했겠는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책을 열심히 읽었다. 실은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수업이 시작해도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어디서 끊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중요한 부분이란 말이다. 가장 흥미진진하고도 재밌는 부분이란 말이다. 다음에 어떻게 될지 알고 싶어. 나는 계속 책을 읽고 있었다. 선생님은 수업시간이 시작되었는데도 소설책을 읽고 있는 나를 일으켜 세웠고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을 읽다가 매를 벌 수도 있다니! 중학교에 올라가자 압력은 더욱 심해졌다. 중고등학교는 소설책을 보는 시기가 아니라 참고서를 봐야 하는 시기였다. 사방에서 태클이 들어왔다. 나는 공부를 하기 싫었고 책을 보고 싶었지만 '똑같은 책을 보려거든 소설책이 아니라 참고서를 봐야지!' 하는 사고가 이미 내 안에서도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책이 그 책이 아니건만. 결국 공부가 하기 싫었던 나는 책을 보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 그 대신 나는 만화책을 보기 시작했다. 대여점에서 안 빌린 만화가 없을 정도로 만화책을 많이 읽었다. 학교가 일찍 파하는 시험기간에는 시간이 남아 돌아서 하루에 50권씩 대여를 했다. 내 성적에는 진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려가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때까지 책에서 읽은 것들이 여전히 시험에 나오고 있었다.
나는 드디어 대학에 갔다. 대학에 가면 재밌는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진짜 공부를 하게 될 거라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기대를 하고 있었고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 한참 만에(6년 만에-_-) 책을 읽으니 재미가 없었다. 아니, 책은 재미가 있었지만 읽는 방식이 미묘하게 재미가 없었다. 혼자 읽을 때가 더 재밌었던 것이다! 국문과에서 가르쳐주는 비평 방식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방식을 가르치는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금세 국문과에 흥미를 잃었고 문학과 바이바이했다. 나의 관심은 국문과 옆에 붙어 있는 철학과로 이동했다. 철학과에서 책을 읽고 얘기하는 방식은 국문과에서 책을 읽고 얘기하는 방식보다 훨씬 더 내 마음에 들었다. 철학은 나의 복수전공이 되었다.
졸업을 하고 출판계에 입문했다. 뻔하지 않은가. 아니면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겠는가. 지금까지 이 포스팅을 읽은 사람들, 대답해보라. 여러분이 보기에도 답이 뻔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뻔하게도 출판계에 들어왔다.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하기도 하고 편집자로 일하기도 하면서 그럭저럭 몇 년인가 흘렀다. 삐까뻔쩍 기획편집자라는 시대의 흐름은 내게 잘 맞지 않았다. 나는 출판사에서도 여전히 그냥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선배가 내게 물었다. "당고 씨는 업무 중에 뭐가 제일 좋아?" 나는 대답했다. "원고 검토요." "어머, 난 원고 검토가 제일 싫던데. 기획할 때나 홍보할 때가 훨씬 재밌어." 그 선배는 베스트셀러 기획자였다. 나는 베스트셀러 기획자가 되지 못했다. 기획도 홍보도 질색이었으니까. 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난 당고 씨가 자연스러워서 정말 좋아. 마감할 때도 남들처럼 바쁘지 않고 평소랑 똑같이 자연스럽잖아." 처음 원고를 받았을 때나 초교를 볼 때나 재교를 볼 때나 OK 교정지를 보며 마감을 할 때나 나는 그저 '읽고 있을 뿐'이었다. 자연스럽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출판사에서는 내가 맡고 있는 원고 이외의 책을 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맡은 원고를 읽거나 참고도서를 읽다 보면 시간이 휘리릭 지나갔으니까. 아니, 이건 거짓말이다. 여섯 시 이후의 시간에 나는 연애질하느라 바빴다-_- 어쨌든 나는 좀 더 자율적인 독서를 원했고 무엇보다 남의 글보다 내 글을 만지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를 때려쳤다. 아니아니, 이것도 거짓말이다. 사실은 그냥 회사에 다니기 싫어서 때려쳤다-_- 회사를 때려치고 나서부터는 닥치는 대로 걸리는 대로 땡기는 대로 아무거나 읽는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공부한다는 느낌도 아니고 책을 열심히 읽겠다는 느낌도 아닌, 그냥 자연스러운 느낌 그대로 나는 책을 읽는다. 또한 나는 내가 쓴 글을 읽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 아무리 못 써도, 지지리 안 느는 글솜씨지만, 내가 쓴 글이 제일 재밌는 법이니까.
독서문답을 하다 보니 인생을 거의 다 써버렸다. 당연하지 않은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쓰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