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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을 조금씩 앞서가는 것 같다. 11월이면 가을이라고 불러도 될 텐데 나는 벌써 겨울을 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최저기온이 1도라잖아. 사람들이 이 추운 날씨에 코트는 입고 다니나? 나는 알 길이 없다. 너무 추울까봐 하루 종일 밖에 안 나갔으니까. 그런데 안 나가도 춥다. 아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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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아주 옛날의 순정만화인데 한승원이 그린「느낌이 겨울인 그대」라는 단편만화가 있다. 한승원은 그야말로 '순정틱'한 순정만화를 그리는 만화가였는데 지금 보면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날 거다. 이 만화의 내용은 친구인 남녀가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매우 뻔하게 그린 건데, 이상하게도 난 겨울만 되면 이 만화가 생각난다. 아마도 주인공 남녀가 겨울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묘사한 부분 때문일 거다. 여자는 아주 춥고 삭막한 이미지로만 겨울을 떠올리는데, 남자는 추운 겨울을 오히려 '따뜻함'으로 설명한다. 따끈따끈한 군밤이나 군고구마, 불 앞에 모여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던 추억, 두꺼운 스웨터 같은 것이 그에게 겨울의 온기를 전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학교 때 이 만화를 보고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아하,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뭐 이런 종류의 깨달음? 그래서 그 뒤부터 겨울이 오면 일부러 따뜻한 것을 많이 생각하려 했다. 따뜻한 이불 속이라든지 고타츠라든지 핫초코라든지 사람의 체온이라든지...... 아, 근데 이게 뭐야? 기온이 내려가니까 여전히 미친듯이 춥기만 하네? 역시 세상은 관념만으로 바뀌지 않는 거야-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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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겨울이 늘 추웠던 이유는 가혹한 난방사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적부터 지독할 만큼 철저한 절약철학을 지니고 있던 엄마는 난방을 잘 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늘 '엄마, 조금만 더 불을...... 30분만 더 불을 때면...... 제발......' 하며 따스함을 갈구했지만(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걸렸던 당고는 절대로 부모에게 뭔가를 대놓고 요구하진 않았다) 돌아온 것은 차디찬 바닥과 코끝을 스치는 냉기였다. 다행히 초등학교 6학년 때 빌라를 떠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 아파트는 중앙난방이었다. 야호! 지구환경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그 아파트는 집 안에서 내복만 입어도 더울 정도로 난방을 빵빵하게 틀어댔다.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아파트의 난방원칙 덕에 후끈후끈한 황금난방기를 보내게 되지만, 낡은 아파트는 곧 더운 물이 지나가는 배관에 문제를 일으켰다. 그리하여 겨울이 오면 엄마는 늘 호스로 에어(?)를 빼내며 난방이 잘 되는지 신경을 써야 했고, 뭔가 막힌 구석이 있었던 고로 집 안의 온도는 살짜쿵 다시 내려갔다. 그래도 엄마 스스로 난방을 조절하던 때에 비하면 백배는 살 만했다. 시간이 흘러 우연한 기회에 교환학생으로 일본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다. 내 방에서 나오는 난방비는 당연히 내 지갑에서 나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목숨을 걸고 난방비를 아꼈다. 누가 우리 엄마의 딸 아니랄까봐-_-; 기숙사 사감이 난방비를 보고 깜짝 놀라서 내가 얼어죽지나 않았는지 걱정할 정도였다-_-;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거의 히터를 켠 적이 없을 정도로 난방을 하지 않고 그해 겨울을 보냈다. 너무 추우면 공동으로 쓰는 부엌에 가서 공부하고(부엌은 불도 때고 히터도 켜놔서 따뜻하니까) 잘 때는 코트까지 입고 잤다-_-; 아무튼 스스로의 절약벽(?)으로 가혹한 겨울을 보낸 뒤에는 본가의 낡은 아파트에서 그럭저럭 따뜻하게 보냈으나, 독립한 지금은 다시 추워졌다. 자취방의 난방기준이 무슨 공무원들이 일하는 건물의 기준 같다. '30도 이상이면 에어컨을 켜볼까'라든지 '영하면 난방을 해볼까'라든지-_-; (물론 공공건물 냉난방 기준은 이것보다 훨씬 양호하다;) 오늘은 최저기온 1도라서 엄청 고민했다. 따뜻하게 살고는 싶지만 나의 절약벽과 가난을 생각하면......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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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겨울이 추운 것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세 번을 외쳐본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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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음식은 따뜻한 겨울답게! 오늘 밤엔 군고구마를 먹고 핫초코를 마실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