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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참 웃을 일이 없다. (웃을 일이라곤 <최고의 사랑>을 시청하는 일뿐......-_-;) 사회적으로도 안 좋고 주변 상황도 안 좋고 개인적으로도 그다지...... 누군가 나를 부르면, 그 요청에 답하고 싶은데 여력이 없다. 그러나 인생은 생각보다 길기도 하니까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에너지가 바닥을 친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위로와 공감과 지지의 말도 자꾸만 꼬이고...... 생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에는 <보왕삼매론>을 읊어본다. 세상살이에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말고, 수행하는 데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며,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며...... 힘든 게 바로 인생이다. 쉽게 가기를 바라지 말자.
* 일곱 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장은진, 김숨, 김미월, 윤이형, 김이설, 황정은, 한유주/열림원/2011/252쪽 일곱 명의 작가가 '비'를 테마로 그려낸 일곱 편의 단편들. 비를 테마로 한 만큼 우울하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우울한 소설들은 아니었다. 자기만의 개성을 가진 작가들이기에, 그리고 거의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기에 어떤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알 수 없었다. 황정은이나 윤이형의 단편이 제일 마음에 들지 않을까, 생각하며 읽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부조리극 같은 김숨의 단편이 제일 좋았다. 무언가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때려치는 것도 아니고, 불안감과 답답함 속에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막연히 기다리며 삶을 흘려보내는 사람들. 대기자라니, 이 얼마나 끔찍한 정체성인가. 황정은의 단편은 다소 추상적인 느낌이었는데 화자가 사람이 아니라 비 그 자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했다. 그렇게 마냥 떨어지고 있으면 낙하하는지 상승하는지 알 수 없는 비. 장은진의 소설은 나와 별로 안 맞는 느낌인 데다가 항상 기시감이 들어서...... 현실감이 떨어지고 어딘가 동화 같은 느낌이 든다. '레즈비언을 사랑한 이성애자 남성'에게 포커스를 맞추면서 레즈비언은 그저 소재 차원으로 전락한 듯하다. 김미월의 소설은 베낀 시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여자의 사연을 담고 있는데, 단막극 느낌이 나면서 유쾌하고 재밌는 성장소설이었다. 윤이형의 글은 역시나 장르소설 스타일로 나왔는데, 본의 아니게 흑마법을 쓰게 된 마법사의 모험이 너무도 판에 박힌 식으로 전개되어 아쉬웠다. 아동성폭력을 다루는 김이설의 소설은 매우 현실적인 감각으로 다가왔으나, 결말에서 환상 또는 환각으로 급히 점프한 느낌이랄까. 파국이 너무 갑자기, 다소 뜬금없는 방식으로 등장한 것은 아닌가. 어쨌든 이 작품은 김숨의 소설과 함께 비가 가진 음습한 면을 가장 잘 살린 단편이리라. 한유주의 소설은 건기와 우기가 번갈아 나타나는 아열대 기후로 변해버린 이 나라의 날씨를 떠올리게 했다. 그것이 행복과 불행아 번갈아 나타나는 우리네 인생과 비슷하다는 것도. 여성 독자를 위한 노림수인 거 같긴 한데, 책의 제목과 표지가 조금 유치한 감이 있다. 후속으로 눈을 테마로 한 단편집도 나온다는데, 이 책보다는 필진이 땡기지 않아서...... 그래도 보긴 할 것 같다. 난 원래 비보다 눈을 좋아하니까. * 02(영이) 김사과/창비/2011/264쪽 『미나』를 읽었을 때는 이질감을 느꼈고 『풀이 눕는다』를 읽었을 땐 흥미를 느꼈고 『02』를 읽었을 때는 공감을 느꼈다. 김사과는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으니 내가 변한 것이라 짐작한다. 『풀이 눕는다』를 읽고 나서 '파국이 더 어울린다'는 메모를 남겼다. 이번 소설집엔 온통 파국뿐이다. 분노와 폭력, 그리고 분열증으로 점철된 이 소설집에 이토록 빠져든다는 점이 나를 한층 더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특정한 대상이 아닌 아무에게나 향할 수 있는 무차별적인 분노와 폭력, 공간과 세계가 기울고 무너져 나를 압박하는 느낌,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고 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알 수 없어서 생기는 공포와 외로움, 주저리주저리 랩하듯 읊조릴 수밖에 없는 분열증적인 망상...... 이 소설집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보이는 이러한 행태와 감각을 생생하고 치밀하게 전달하는 것이 작가의 뛰어난 점이라면, 그것들을 이미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나는 대체 무어란 말인가. 나, 그리고 우리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 이것이 '정상'인가, '제대로 된 것'인가, 잘 가고 있는 것인가. 어떤 이들은 김사과의 소설이 너무 기이하며 그런 소설을 생산하는 작가가 무섭다고 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그녀가 부럽다. 초자아를 거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럽고, 분노로써 현실과 소설을 내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부럽다. 나는 김사과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비슷한 공포를 느끼지만 결코 초자아를 거부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분노할 수도 없다. 나의 분노는 언제나 타다 만 장작처럼 풀썩 쓰러지고, 지나친 자기 검열이 내게 준 선물이라곤 무기력과 우울뿐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초자아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사과는 소설 속의 인물들을 망설임도 없이 잔인하게 죽이지만, 나는 애써 그것이 환각이라 생각하려 한다. 현실에서 더한 죽음을 목격함에도 소설 속의 세상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도 두렵다. 내가 실제로 그토록 폭력적인 세상에 살고 있음에 직면하는 것이 공포스러운 것이다. 나는 묻는다. '폭력적인 현실을 꼭 폭력적인 방식으로 보여줘야만 해?' 질문이 돌아온다. '그러면 어떻게 보여줄 건데?' 나에게는 답이 없다. 이게 문제다. * 습지생태보고서 최규석/거북이북스/2005/272쪽 최규석의 작품 중에서 『습지생태보고서』가 제일 좋았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가 아직까지도 가장 좋다. 어쨌든 모두가 추천하는 이 만화를 읽었는데, <팔이 잘려본 사람은 손가락 잘린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예전에 상담원 교육을 받을 때 그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픈 경험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공감이란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발에 망치가 떨어져서 다쳐본 사람은 그 아픔을 참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도리어 손톱 밑에 가시가 박힌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와 타인을 비교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기연민과 우월의식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형상화한 부분이 참 좋았다. 이상을 지향하지만 현실에 발 붙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청춘들의 모습을 거품 없이 그려냈고, 작가 본인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포장하지 않으려 한 점도 마음에 든다. 애완 사습 녹용이 캐릭터는 귀엽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ㅠ_ㅠ 중간에 여성을 대상화하는 모습들에 조금 힘들기도 했으나, 남자 대학생들의 리얼한 모습이라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ㅠ_ㅠ 작가가 후기에 자기가 돈 벌고 나니까 뭔가 태도가 달라지더라, 하는 얘기를 하는데 참 웃기기도 하고 공감이 가기도 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변했다고 느껴지면 그것이 통장의 잔액과 관계가 있는 것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라는 말이야말로 진정 유물론적인 것이 아닌가. 안타까운 것은, 실제로 통장 잔액이 늘고 나서 행동이 변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난 변하지 않았어!"라고 외치기 바쁘지. 어쨌든 최규석이 가난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가난을 대하는 태도랑 참 비슷하다. 혹시 이런 사람들이 가난하게 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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